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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슬로베니아

낯선 도시, 그보다 낯선 [블레드]

あかいいと 2013. 5. 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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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가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으로 기억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알프스의 눈동자, 블레드 호수.
대체 어디 있는 나라냐고 사람들이 물어볼 정도로 낯선 슬로베니아에, 혼자라도 다녀오겠다고 생각한 건..그 호수가 시작이었다.


류블랴나 기차역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버스터미널.
공사장에서 현장 사무실로 쓰는 가건물처럼 생겨서 유심히 찾아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렵다.

터미널에서 구매한 블레드행 버스 티켓은 7.8 Euro. 운전기사에게 직접 티켓을 사면 6.3 Euro.
왜죠? 무슨 차이가 있는거죠?








동화 속 마을 같은 크란(Kranj)과 크고 작은 정류장을 거쳐서 한시간 반만에 도착한 <Blejsko Jezero(블레드 호수)>
버스를 탈 때부터 낮은 하늘이 찌뿌드드 흐려 있더니, 결국 비를 뿌린다.
비수기여서인지 비가 와서인지, 인기척 없는 호수는 호젓하다 못해 호러스럽다.









블레드 호수 둘레는 6km 정도로 천천히 걸으면 2~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토독토독.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호수를 반 바퀴쯤 돌았을까..축축하게 젖은 운동화가 무겁고 체온이 떨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산을 들고 사진 찍기도 버겁다.
소원의 종이 있다는 블레드 섬을 왕복하는 플레트나(Pletna)도 탈 수 없다.

그렇다면..밥이나 먹으러 가자.



블레드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크림 케이크(Blejska Kremna Rezina) 오리지널 카페에 홀려 계단을 올랐으나..
비를 피해 몰려든 사람들이 전부 이 카페에 들이닥친 것인지 빈자리가 없어서 크림 케이크 1차 시도 실패.

먹을 것을 코앞에 두고 먹지 못해서 급격히 배가 고프다.
손님들이 제법 있어보이는 <Ostarija Peglezn>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읽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는 레스토랑 이름만큼 난감한 메뉴라니..이럴 때에는 믿고 먹는 "직원 추천"
'진짜 슬로베니아의 맛'을 보여주겠다던 친절한 아저씨는 내게, 맥주 안주를 남기고 퇴근했다.



대낮부터 맥주를 부르는 메뉴 Kranjska Klobasa(Carniola Sausage) 8 Euro.




밥(?)과 술로 배가 두둑해지니 다시 움직일 힘이 난다.
호수와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Blejski Grad(블레드 성)> 가는 길-
도보로 15분이라는 표지판은 거짓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계단이 많다는 걸 알려주지 않을 뿐.





블레드 성 입장료는 성인 8 Euro.
티켓에는 성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사용 가능한 1.5 Euro 쿠폰이 포함되어 있는데,
"Don't miss the bonus"라고 써있는 쿠폰을 한국에 돌아와 사진 정리하면서 발견하다니.
주는 것도 못쓰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천 년이 되었다는 블레드 성은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지만 전망 하나로 '성(城)'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 같다.
날씨가 맑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비 내리는 호수도 산그림자와 안개에 흐려진 블레드 섬도 그 나름대로 아름답다.





블레드 성에서 나온 유물들과 유골을 전시하고 있는 작은 박물관 한가운데,
율리안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트리글라브(Triglav) 산과 블레드 호수 입체 모형이 생경하다.




블레드 성에서 <St. Martin Church(성 마틴 교회)>를 거쳐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위험하게 횡단 중인 달팽이 몇 마리를 구조하고, 어미 옆에서 몸도 못 가누는 새끼 양도 구경했지만,
역시나 이 동네는 사람 구경이 제일 어렵구나.











정말 사람 사는 동네가 맞나..싶을 정도로 인기척 없는 마을.
버스터미널로 돌아가다가 건물 입구에서 젊은이 세 명 발견.
가까이 가보니 호스텔 건물로, 시끄러운 음악이 새어나오는 로비에서는 해도 지기 전에 술판이 벌어졌다.
슬로베니아에 도착해서 처음 본 생기 있는 공간에 어울리고 싶었지만 버스 시간이 밭아서 발길을 돌린다. 






블레드에서 류블랴나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쉽다'
비와 안개 때문에 호수를 한 바퀴 다 돌아보지 못한 것도,
플레트나를 타고 블레드 섬에 가서 소원의 종을 치지 못한 것도,
블레드 성에서 (돌아와서 알게 됐지만 쿠폰으로 마실 수 있었던) 커피 한잔을 못한 것도.
무엇보다..이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행복한 시간을 나누지 못하고 내 눈과 혼자만의 기억에만 담아야 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가. 아쉬움이 있어야 다시 올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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