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well travelled
자카르타-족자카르타 기차 1등석(Compartment Suite/컴파트먼트 스위트) 탑승 후기 본문
비행기 운항 시간은 한 시간도 안 되지만 족자카르타 신공항이 워낙 먼 곳에 있어서 시내까지 차로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탓에 자카르타 집에서 족자카르타 숙소까지 도어 투 도어 5시간. 기차로는 빨라도 6시간 반이 걸린 데서 오로지 비행기만 생각했는데, 그 6시간 반을 누워갈 수 있다면 해볼 만할 것 같아서 이번에 도전!
Ticketing
우리나라 코레일톡 앱처럼 Access by KAI(PT. Kereta Api Indonesia) 앱에서 Stasiun Gambir(Gambir Station/감비르역) ↔ Stasiun Tugu Yogyakarta(Yogyakarta Tuga Station/족자카르타 뚜구역) 티켓 구매. 인도네시아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기차 티켓 사려면 역에 직접 가야 했는데 세상 좋아졌구먼.
우리나라는 속도에 따라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 이렇게 기차 이름이 있다면, 여기는 매 기차가 다른 이름이어서 티켓 구매 단계별로 스크린샷 해뒀는데 저장한 폴더가 통째로 날아가서 이건 다음 기회에.. 그 와중에 살아남은 티켓 스크린샷.
Stasiun Gambir(Gambir Station/감비르역)
모바일 티켓을 실물 티켓으로 교환해야 한다는 후기가 있고, 실물 티켓 없이 탑승할 수 있다는 후기도 있었는데, 모바일 티켓만으로 무사통과. 처음 와본 감비르역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깨끗하고 밝고 신식(?). 개찰구에서 표, KTP(주민등록증)과 얼굴을 스캔해야 하는데, 외국인이라 검표 직원이 본인 얼굴을 대신 찍어주고 입장.
컴파트먼트 스위트 티켓으로 이용 가능한 라운지가 있다니, 여러모로 놀라운 인도네시아 기차여행. 이름처럼 대단히 럭셔리하진 않아도,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먹으면서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어딥니까.
플랫폼도 의자나 쓰레기통 같은 시설 정비는 새로 한 것 같았지만, 문제는 울퉁불퉁한 바닥과 좁은 통로. 기차 끝에 있는 컴파트먼트 칸까지 캐리어 끌고 이동하기가 녹록지 않다. 그래서 나중에 자카르타 돌아와서는 난생처음 포터 서비스를 써봤는데, 나 왜 그동안 포터 서비스 안 썼지? 5만 루피아로 내 손목과 도가니를 지킬 수 있다니, 올해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스스로 백번 칭찬.
Compartment Suite(컴파트먼트 스위트) Cabin
기차에 오르자마자 감탄 연발. 복도만 봐도 이게 기차가 맞나 싶고, 어느 나라 가서 일등석 기차를 타도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싶은 인테리어.
컴파트먼트 스위트라는 이름처럼 좌석 하나가 작은 방이고, 문까지 닫으면 캡슐 호텔 같은 느낌.
180도로 펴면 침대처럼 누울 수 있고, 온열은 물론이고 마사지 기능까지 있는 의자가 정말 대박.
비행기처럼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개인 모니터도 있고, 노이즈 캔슬링까지 되는 고급진 헤드폰까지 제공해 주지만, 인니 영화와 인니어 자막이 있는 외국 영화에는 무쓸모.
족자카르타행은 B 열에 앉으면 이렇게 모나스 뷰에서 출발-
Compartment Suite(컴파트먼트 스위트) Service & Meal
휘황찬란한 하드웨어에 치여서 WOW 타령하고 있는 와중에 나오는 웰컴 드링크와 핫 타올. 웰컴 드링크는 인니에서 유명한 저온 착즙 주스 브랜드인 Rejuve 음료. 대용량 주스를 잔으로 따라서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1인 1병으로 제공하니 더 안심.
팬데믹 이후에 비행기 비즈니스석 기내식도 퀄리티가 많이 떨어져서, 솔직히 기대 1도 안 한 기차 기내식..인데, 이거 왜 맛있지?
보이는 거랑은 완전 다르게 살살 녹는 에그타르트, 그리고 기차에서 Sop butut(솝 분뚯/꼬리곰탕)을 주는 것도 신기하고, 이게 맛있는 건 더 신기하고.
자카르타로 돌아오는 기차에선 매운 닭요리. 인도네시아에서 맛없기 어려운 닭도 닭이고, 저 취나물 같은 채소볶음에 삼발 조합이 왜 맛있지?
"이거 왜 맛있지?" 백번 하면서 밥 다 먹고 커피 타임.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중에 원두도 고를 수 있다니 서비스의 끝은 어디인가. 물론 인니식 커피라서 원두 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커피가 식어버리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쯤 되면 식어 빠진 커피마저도 감동적.
Stasiun Tugu Yogyakarta(Yogyakarta Tuga Station/족자카르타 뚜구역)
출입구가 완전히 달라서 도착 땐 못 봤는데, 뽀얗고 귀여운 족자카르타 기차역. 내부는 공사 중이라 개찰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
컴파트먼트 스위트 티켓으로 이용 가능한 앙그렉 라운지. 자카르타 감비르역 라운지처럼 음료와 베이커리류에, 고구마와 감자가 맛있는 구황작물의 도시(?)답게 온갖 색깔의 찐 고구마를 주는 게 다른 점이랄까.
에어컨 바람 맞으며 기차를 기다릴 수 있다는 건 좋은데, 실내에 있는 흡연실 문이 여닫힐 때마다 담배 냄새에 숨을 못 쉴 정도.
자카르타-족자카르타 편도 컴파트먼트 스위트 티켓 가격은 IDR 1,680,000, 약 15만 원 정도. 가루다 인도네시아 편도가 약 10~12만 원 선이라 티켓 자체는 비행기보다 비싸도, 자카르타나 족자카르타나 공항보다는 기차역이 가까우니 택시비가 덜 드는 건 당연하고, 특히 족자카르타 신공항에서 시내까지 차비가 50~60만 루피아 정도 드는 걸 생각하면 도어 투 도어로 총액은 거의 비슷.
가격적인 메리트는 없지만, 수화물을 쌀 때 체크인/기내 수화물을 신경 써서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고, 바깥 풍경은 쉴 새 없이 바뀌니까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누워 잘 수 있는 좌석에 새로운 풍경이 나와도 6시간 반이 짧은 시간은 아니고, 게다가 일부 구간은 승차감이 말도 못 하게 거지 같아서 누워왔는데도 희한하게 피곤한 것이 단점.
그럼, 다음번 족자카르타 갈 때 비행기 탈래 기차 탈래 물어본다면, 한 번 정도는 더 기차를 타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