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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well travelled
iPhone 4S가 나온다고 했다. 음성 인식 기술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Siri는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물건에 쉽게 싫증 내는 성격도 아니고 iPhone 5로 바꾸려고 버티고 있던 터라 신경도 안쓰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약정 끝난 3GS를 4S로 바꿔준단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들어 통화 끊고 2~30초씩 먹통인데다 터치감까지 둔해져서 답답해하고 있던 참에. 신청하고 이틀 만에 iPhone 4S 하양이를 받았다. 3GS 때와 마찬가지로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것만 들어있는 케이스. 우리팀 K군의 표현을 빌자면 "케이스도 쫀쫀하다" 덕분에 이어폰, 데이터 케이블, 충전기가 하나씩 더 생겼다. 집에 아이폰 충전기만 4개. 풍년이로구나. 퇴근 무렵이라 당일 개통을 못해서 통화도 안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스러져갑니다. 다만 며칠이라도 이별을 준비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좋아하는 술은 소주, 즐겨피우던 담배는 장미, 가을에는 꼭 전어회를 찾던 당신. 일요일에는 전국노래자랑을 챙겨봐야 하고, 끝끝내 주완이라 부르지 않은 정식이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살던 당신. 최서방이 인사 가던 날, 훤칠하고 잘 생긴 신랑감을 데리고 왔다고 기분이 좋아져서 소주를 두 잔이나 드시던 당신. 그런 당신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를 키워준 당신의 손. 혈관조차 찾을 수 없어서 링거도 간신히 꽂아놓은 거칠하고 앙상한 손. 최서방이 내 손은 당신 손을 닮았다고 합니다. 거칠하고 주름이 많은 못생긴 손을 항상 부끄러워했는데, 내 손이..정말 당신 손을 닮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못생긴 내 두 손이 부..
남산 왕돈까스 거리에 부자연스럽게 끼어 있는 로스팅 하우스라니. 상호보다 더 큰 글씨로 "로스팅 하우스라고! 여기서 직접 로스팅을 한다니까!"라고 외치고 있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N서울타워까지 왕복 등반한 여파로 다리가 후들거려서..속는 셈 치고 들어가보기로 한 "원조 왕돈까스", "남산 1위 맛집", "1박2일에 나온 집"이라며 미관은 아랑곳하지 않는 왕돈까스집들 사이에 나무 느낌의 카페 외관은 확실히 눈에 띈다. 카페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정말 다양한 종류의 생두와 로스팅한 원두들, 그리고 커피나무. 로스팅한 원두를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생두를 직접 로스팅해서, 그라인딩하고 핸드 드립도. 로스팅한 정도와 숙성도를 선택할 수 있고, 원두별로 100g씩 살 수 있다. 에티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만델링, 탄자니아 AA, 예멘 모카 마타리가 추가되었다. 홍대 곰다방에서 사온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만델링은 아무 감흥 없이 지나갔다. 심지어 이르가체페마저 무슨 맛인지 모를 지경이었으니 원두 탓이 아니라 곰다방 로스팅에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 그런데 에서 별 기대 없이 산 예멘 모카 마타리의 반전. 지난 번 커피 지도를 그릴 때만해도 우리 커플이 생각하는 최고의 원두는 콜롬비아 수프리모였는데, 수프리모가 무슨 맛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예멘 모카 마타리는 새로운 맛이다. 심지어 커피가 식어도 처음 내렸을 때랑 거의 같은 맛을 내는 신기한 원두다. 아니면 허형만의 커피 볶는 집의 로스팅 때문이거나. 우리 커플은 시작치고 제법 많은 원두를 마셔봤다 생각했는데 오늘 남산 로스팅 하우스에 ..
시외할머님의 아흔 번째 생신을 맞아 할머님 계시는 초정으로. 시댁 집안 행사고, 며느리라고는 아직 나밖에 없어서 고생할까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아무것도 못하게 하시는 어른들 덕분에 집주변 산책에 나섰다. 농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모내기는 늦봄에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6월이 다 되도록 모내기가 끝나지 않은 논들이 여기저기. 오랜만에 보는 보리밭과 마지막 송이를 피워낸 아카시아, "여기가 마을 입구"라고 알려주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평소에는 녹색이라면 질색하는 나지만, 역시 사람은 녹색을 보고 살아야 하겠지. 눈 시리게 푸른 빛을 한참 보다보면 일하면서 얻은 만병이 조금 수그러드는 느낌이랄까. 점점 성장하고 있는 최서방의 사진 실력. 언젠가 안정된 구도는 물론이고, 조금 더 '길게' ..
하루종일 홍대에서 늘어지기로 한 일요일. 에서 점심 먹고, 북카페에서 공부도 좀 하고, 에서 제주오겹살을 먹기로. 홍대 사옥에서 있을 때 워크샵했던 이나 같은 북카페도 많지만, 날씨가 좋은 탓인지 워낙 사람이 많아서 근처에 가기도 꺼려지던 차에 검색으로 발견한 북카페 대놓고 오래있어도 괜찮다는 이 카페, 이름만으로도 솔깃하게 만든다. 게다가 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산울림 소극장 맞은 편에 있다해서 찾아갔더니 전주식당과 새싹밥상 2층에 있는 카페. 건물의 전체적인 느낌도 북카페가 있을 자리는 아닌듯한데..이 언발란스란. 밖에서 보던 언발란스한 카페는 온데간데 없고, 원목 느낌으로 따뜻한 카페 내부.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가자리와 조모임을 위한 큰 책상,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앉을 수 있는 좌식 공간도...
일본에서 먹었던 오야꼬동이 생각나도 서울에서 제대로 된 오야꼬동을 먹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오야꼬동이 먹고 싶은 날이면 갈 수 밖에 없는 홍대 신랑도 오야꼬동을 좋아하고, 둘 중 한 명이 오야꼬동이 먹고 싶어서 간 날에는 다른 한 명은 가츠동이나 규동을 시키기도 하는데, 다행히 이곳의 다른 메뉴도 다 맛있다. 가라아게동도. 아마도 요리를 직접하시는 일본인 사장님의 손맛인듯. 홍대에서 마포도서관을 지나 홍대입구역으로 가는 길 왼쪽으로, 사람이 다닐 것 같지 않은 작은 골목에 있어서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맛이나 가격에 비해 북적거리지 않고, 간혹 식사시간이라서 웨이팅이 있어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닭고기와 달걀 반숙이 올라간 덮밥, 오야꼬동.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에, 자박한 국물이 부드..
한남동 단국대 부지에 들어선 고급 빌라 단지 한남 더 힐(The Hill). 원래도 대사관들과 UN 빌리지 덕분에 숨어있는 고급 음식점은 꽤 있는 편이었지만, 한남 더 힐이 들어선 이후로 한남 오거리를 중심으로 안쪽 골목들이 초기 가로수길 모습을 닮아간다. 덕분에 회사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할 만한 곳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폭우에 이어진 숨막히는 황사가 걷힌 화요일 점심, 한번쯤 가보고 싶었던 위치는 플라워 카페로 소개한 바로 옆 건물. 역시 사진의 완성은 햇빛. NEX로 찍었으면 더 잘 나왔겠지만, 많이 아쉬운대로 iPhone 3Gs를 들이밀었는데도 햇빛이 얼마나 좋았는지 기본이 이 정도. 붉은 벽돌 건물이고 외부에는 변변한 간판조차 없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3/4은 테이블이고, 1/4은 ..
아버님과 주말 식사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온 엄마 보러 구리에서 성수동 가던 길. 시댁 아파트 단지 후문에서 우회전하는 순간 뒤에서 '쿵' 분명 횡단보도도 빨간불. 신호 기다리는 사람들도 확인하고 2차로도 아닌 1차로로 진입했는데. 후방 거울을 보니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넘어져있다. 횡단보도 빨간 불 켜진 상황에 도로로 튀어나온 아이는 처음에는 연신 "죄송합니다"하더니 다치지 않았다며 부모님 연락처는 알려주지 않고 신랑 명함만 가지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다니 본인이 잘못했다는 걸 알 정도의 사리분별은 있어보였다. 놀란 마음에 못챙긴 목격자 진술 확보, 목격자 전화번호 확인, 사고 현장과 차 사진 촬영, 보험 회사에 사고 접수까지 마쳤다. 할 만큼 했고 애는 찰과상 하나 없었던데다 내 잘..
오늘은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신사동에서 외부 교육을 받는 날. 점심 때는 따뜻하기까지 했는데 교육이 끝날 즈음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로 돌변했다. 아주 잠깐 택시를 탈까 생각했지만 '차 없이는 외출도 못하는 여자' 또는 '다리가 퇴화된 인간'이 되어가는 듯하여 지하철을 타기로 결심. 나오면서 카드를 찍는데 갑자기 뿌듯하고 이상한 기분이 몰려온다. 신사에서 집까지 족히 2만 원은 나왔을 택시비를 아꼈다 생각하니 스스로 자랑스러운 생각까지 든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지하철역을 나서는데 프레지어가 2천 원. '그래 2만 원이나 아꼈는데 2천 원짜리 꽃은 살 수 있는거 아니겠어?' 프레지어 두 단을 사들고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눈을 맞으며 집에 왔다. 3월 말에 웬 눈인가 싶기는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