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TALK/simplog (55)
Life well travelled
제대 후 쉴 틈 없이 드라마 두 편, 영화 한 편을 마친 온군에게 찾아온 휴가. 나라면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탔을텐데..온군은 보기보다 여행 욕심이 없다. 그런 온군이 시작한 쌩뚱맞은 소일거리.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직접 고른 스톤으로 한 땀 한 땀 팔찌 만들기- 심지어는 이 시간에 마포에 친히 배달까지. "생각보다 잘 만들었다"고 했다가..얼마나 비싼 스톤으로 고생스럽게 만든건지 구구절절. 심심해서 시작했는데 이것저것 사다 보니 일이 커진거 같고, 그렇다고 팔 수도 없는 노릇인데 만들기는 해야 되고, 오죽하면 이 밤에 이걸 들고 마포까지 왔겠나. 그런데 빈말이 아니라 정말 잘 만들었다. 이 꼼꼼하고 섬세한 작업을 남자 손으로 했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팔찌에 따라온 'la prairie' 배보다 배꼽이 ..
iPhone 4S가 나온다고 했다. 음성 인식 기술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Siri는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물건에 쉽게 싫증 내는 성격도 아니고 iPhone 5로 바꾸려고 버티고 있던 터라 신경도 안쓰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약정 끝난 3GS를 4S로 바꿔준단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들어 통화 끊고 2~30초씩 먹통인데다 터치감까지 둔해져서 답답해하고 있던 참에. 신청하고 이틀 만에 iPhone 4S 하양이를 받았다. 3GS 때와 마찬가지로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것만 들어있는 케이스. 우리팀 K군의 표현을 빌자면 "케이스도 쫀쫀하다" 덕분에 이어폰, 데이터 케이블, 충전기가 하나씩 더 생겼다. 집에 아이폰 충전기만 4개. 풍년이로구나. 퇴근 무렵이라 당일 개통을 못해서 통화도 안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스러져갑니다. 다만 며칠이라도 이별을 준비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좋아하는 술은 소주, 즐겨피우던 담배는 장미, 가을에는 꼭 전어회를 찾던 당신. 일요일에는 전국노래자랑을 챙겨봐야 하고, 끝끝내 주완이라 부르지 않은 정식이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살던 당신. 최서방이 인사 가던 날, 훤칠하고 잘 생긴 신랑감을 데리고 왔다고 기분이 좋아져서 소주를 두 잔이나 드시던 당신. 그런 당신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를 키워준 당신의 손. 혈관조차 찾을 수 없어서 링거도 간신히 꽂아놓은 거칠하고 앙상한 손. 최서방이 내 손은 당신 손을 닮았다고 합니다. 거칠하고 주름이 많은 못생긴 손을 항상 부끄러워했는데, 내 손이..정말 당신 손을 닮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못생긴 내 두 손이 부..
아버님과 주말 식사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온 엄마 보러 구리에서 성수동 가던 길. 시댁 아파트 단지 후문에서 우회전하는 순간 뒤에서 '쿵' 분명 횡단보도도 빨간불. 신호 기다리는 사람들도 확인하고 2차로도 아닌 1차로로 진입했는데. 후방 거울을 보니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넘어져있다. 횡단보도 빨간 불 켜진 상황에 도로로 튀어나온 아이는 처음에는 연신 "죄송합니다"하더니 다치지 않았다며 부모님 연락처는 알려주지 않고 신랑 명함만 가지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다니 본인이 잘못했다는 걸 알 정도의 사리분별은 있어보였다. 놀란 마음에 못챙긴 목격자 진술 확보, 목격자 전화번호 확인, 사고 현장과 차 사진 촬영, 보험 회사에 사고 접수까지 마쳤다. 할 만큼 했고 애는 찰과상 하나 없었던데다 내 잘..
오늘은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신사동에서 외부 교육을 받는 날. 점심 때는 따뜻하기까지 했는데 교육이 끝날 즈음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로 돌변했다. 아주 잠깐 택시를 탈까 생각했지만 '차 없이는 외출도 못하는 여자' 또는 '다리가 퇴화된 인간'이 되어가는 듯하여 지하철을 타기로 결심. 나오면서 카드를 찍는데 갑자기 뿌듯하고 이상한 기분이 몰려온다. 신사에서 집까지 족히 2만 원은 나왔을 택시비를 아꼈다 생각하니 스스로 자랑스러운 생각까지 든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지하철역을 나서는데 프레지어가 2천 원. '그래 2만 원이나 아꼈는데 2천 원짜리 꽃은 살 수 있는거 아니겠어?' 프레지어 두 단을 사들고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눈을 맞으며 집에 왔다. 3월 말에 웬 눈인가 싶기는 하지만 ..
창립기념일이라 더 늑장 부릴 수 있는 날인데 같이 점심 먹으러 회사 앞까지 찾아온 현정. 그리고 생일 선물 good ovening cupcake! 내 취향을 남편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당신이라 사랑할 수 밖에 없구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굿오브닝 컵케이크- 초코 컵케이크는 내꺼. 팀 여자분들 하나씩 나눠드리고, 깨알 같은 하트가 올라가 있는 민트 컵케이크는 선아에게- [선아의 감사 메세지] 역시 컵케이크는 굿오브닝이라며. 아메리카노랑 참 잘 어울린다며. 맛있게 먹고 나서 생각해보니.. 토요일에는 시댁에서 케이크, 일요일에는 신랑이 만들어준 케이크, 월요일에는 팀원들이 준비한 케이크. 오늘 컵케이크까지.. 생크림이 모세혈관까지 퍼져있는 느낌. 당분간 케이크는 자제 좀..
콰트로를 사고 란도리 때보다 주차하면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당연하게도. 어느 날처럼 주차라인 양쪽으로 10cm씩 공간을 남기고 예쁘게 주차를 해뒀는데.. 아침 출근길 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이 지경이 된 콰트로를 보고 주저앉을 뻔했다. 상처만 나도 속이 쓰릴 새 차인데 범퍼는 찢어진데다 휀다까지 움푹 패여있다니.. 게다가 하필 주차한 곳이 CCTV 사각지대여서, CCTV 세 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범인은 찾을 수가 없었다. 콰트로의 처참한 모습. 말로 다 할 수 없이 속상하다. 범인을 못잡아서 결국 자차 보험 처리하기로 하고 서비스 센터에 보냈다. 이 상황에 다행이라는 소리가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아우디 서비스 센터는 지금까지 다녀본 공업사의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내 차를 확인한 접수처 ..
어렸을 때 "오늘은 뭐 먹을까?", "무슨 반찬 해먹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엄마. 그 혼잣말 같은 물음은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올 수록 더 빈번해졌다. 그리고 마치 결심이라도 한듯한 엄마는 동네 슈퍼에서 간단한 장을 보고 저녁을 차렸다. 엄마가 옆에서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무슨 반찬을 해야 할지 귀찮을 정도로 물어볼 때면, 대충 아무거나 해서 먹으면 되지 무슨 고민을 저렇게 매일같이 하나 싶었다. 세상에 저녁 메뉴 말고도 고민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이제 내가 그 고민을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그때 엄마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세상 사람들 모두 같은 고민을 하는가보다. 오죽하면 [오늘 뭐 먹지] 어플리케이션이 나왔을까. 그나저나 아직 점심도 먹기 전인데 벌써부터 같은 고민이 시작된다. ..
집을 나설 때. 현관문이 잠기는 전자음을 듣고 현관문 손잡이를 두 번 당겨본다. 의심 많은 성격에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면서 한 번. 오늘 이 집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다짐하며 또 한 번. 퇴근 길 '오늘도 무사히 집에 돌아왔구나' 생각할 수 있게- 그런데 어제 아침은 바쁜 마음에 현관문 손잡이를 당겨보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신종플루 예방 접종 맞으러 가다 회사 계단에서 발을 헛딛여서 제대로 굴렀다. 덕분에 피를 한 움큼 쏟고 응급실행. 지혈도 제대로 안해서 계속 피가 쏟아지는데 3시간을 눕혀놓고 누구 하나 들여다볼 생각을 안한다. ER이라며.. 간신히 의식을 차렸는데 파상풍 검사에 피 한 번 뽑으면서 바늘 하나를 제대로 못 꽂는 PK. '그래 너도 하나의 의사가 되려면 마루타가 필요하..
며칠 전 동생이 홍콩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살짝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다. 홍콩 여행에서 챙겨온 온갖 사람들 선물 중에 누나 것만 쏙 빠진 사건. 나도 일 년에 네댓번씩 해외에 나가는 사람이라 딱히 필요하거나 가지고 싶은 건 없지만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이 사람 저 사람 선물은 다 챙겨와 놓고 이민 가방만 한 캐리어에 누나 초콜릿 하나 넣을 자리가 없었다는 변명이 못내 서운했다. 선물 받고 좋아할 녀석을 생각하면서 뉴욕 마크 제이콥스에서 아픈 몸으로 한참 동안 티셔츠를 골랐던 내가 바보 같기도 했고. 그래도 핏줄인지라.. 어제 새벽 5시에 잠옷 차림으로 배웅 나와준 녀석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 풀리긴 했는데.. 오늘 문자 한 통에 마음이 완전히 풀어졌다. 한동안 업무에 치이고, 어제 영하의 기온에..